유령 기음(phantom fundamental, missing fundamental)은 고조파의 구성요소 중 일부만 존재하더라도 존재하지 않는 더 낮은 기음이 복원되는 청각적 경향성이다. 예를 들어, 220Hz와 330Hz의 순음이 함께 들려올 때, 각각의 음이 따로 들려올 때보다 더 낮은 소리가 출몰한다. 그 소리는 우리의 청각이 추론한 결과로 나타나는 것인데, 이것은 전화기의 하이패스 필터와 같은 강한 음향적 여과기를 통과한 뒤에 목소리에서 젠더를 구분하게 하는 기본 대역이 제거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남성의 목소리를 구분할 수 있는 원리와 동일하다.
잔여음고(residual pitch) 또는 가상음고(virtual pitch)라는 이름으로도 불리우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유령 기음은 '존재하지만 들리지 않는 소리'가 아니라 '존재하지 않지만 들리는 소리'이다. 전자가 소리의 물리적인 라우드니스, 혹은 보이고 들리게 만드는 정치의 장과 관련된 것이라는 인상을 주는 반면, 후자의 경우에는 환청이나 비인간적 듣기, 나아가 음향적 허구와 관련될 것만 같다. 유령 기음이 출몰할 때, 여기에 있는 소리들은 여기에 없는 소리의 들러리로 전락한다. 없는 것은 기음인가, 아니면 기음을 출몰시킨 소리들인가?
이 현상에 관여하는 생리학적 구조는 달팽이관의 토노토피(tonotopy)이다. 음조(ton-)와 장소(-topy)의 합성어라는 점이 보여주듯, 이 기관은 들려온 각각의 주파수에 따라 구분하도록 돕는 달팽이관의 나선형 배열을 뜻한다. 각각의 주파수는 이 구조의 각기 다른 부분을 활성화하는데, 예를 들어 고주파는 달팽이관에서 가장 넓은 기부(base)에서 감지되고, 저주파는 달팽이관의 가장 깊숙하고 좁은 부분인 첨부(apex)에서 감지된다.
토노토피 구조로부터 우리의 청각 시스템 자체가 일종의 대역 필터처럼 구성되어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통과시키는 소리의 대역이 고정되어 있는 기계적 대역 필터와 달리, 이 경우 달팽이관 내에서 입력된 자극을 신경 신호로 변환하는 유모세포의 신경 가소성에 따라 청각 정보의 처리가 변화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노환이나 약물 부작용으로 한 신경 손상으로 특정 주파수 영역을 감지하지 못하더라도, 뇌는 그 영역을 다른 주파수 대역으로 재할당하거나, 가까운 주파수 대역을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재조정하기도 한다. 토노토피는 일종의 동적 대역필터인 것이다.
일련의 배음이 그것이 존재해야 하는 것처럼 배열되어 있으면 기음이 들린다는 것은, 고조파의 음향적 정합성이 기음의 구성에 결정적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파동의 마루와 골짜기가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동기화 되었다가 깨지기를 반복하는 리듬 속에 놓여있을 때 발생한다는 점으로 인해, 유령 기음은 저음역대를 건드리지 않으면서 저음을 증폭하는 마스터링 플러그인과 같이 산업적으로 이용 가능한 현상이 된다.
그렇지만 그 소리가 그곳에 있으리라는 짐작 내지는 추론에 의지해 들려온 소리에 대한 믿음이 생겨난다는 점에서, 유령 기음의 형성은 환청의 형성 과정과 닮아있다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단지 그러한 음향적 추론이 배음의 정합성에 기반해 있으면 음향심리학적으로 해명이 가능한 현상이 되고, 주관적 합리성에 기반해 있으면 환청이 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환청은 그것을 듣는 다른 마음이 경험하거나 접근하지 못한, 아직 알려지지 않은 리듬 속에 말려든 결과로써 출몰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문제는 환청을 듣는 경험이 어떠한 것인지는 여전히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것으로 남아있다는 점이다. 모든 세상이 자신을 표적으로 비밀의 말을 속삭이고 있다는, 아무래도 그럴듯하지 않은 그런 소리를 들었다고 주장하는 순간조차 그 소리는 점점 더 과거의 것이 되어가고 있고, 더욱더 그 진위 여부를 확인할 수가 없게 되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청을 경험하는 귀가 잠겨들고 있는, 알려지지 않은 리듬을 우리도 경험할 수 있을까? 귓속에 말아넣어진 동시에 외부로 펼쳐지고 있는 동적 대역필터는 장애의 유무에 상관 없이 각기 따른 수준에서 작동하고 있는 잔존 청력에 맞게 시시각각 새로이 조정되고 있다. 이 소리-장소-지도에는 축척 자체가 진동 상태에 놓여있다. 그 흔들리는 지도를 펼쳐 보이고, ‘나는 여기쯤에 있다’고 말하는 가상의 대화가 벌어지고 있다고 상상해보자. “지금 나는 여기 쯤에 있다. 여기서 그 소리는 […]처럼 들린다.”
20241110 Satanic Bigun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