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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말도 안되는 소리 마라'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와 같은 관용구를 쓰곤 합니다. 대체로 부정적으로 사용하곤 하는 이 표현을 가만히 뜯어보면, 존재하는 모든 소리가 말로 취급되는 것은 아니라는 전제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말에 미치지 못하는 모든 소리가 말도 안되는 소리일까? 말이 되는 소리는 특정 시점부터 말이 된 소리입니다. 따라서 어떤 소리는 지금 당장은 말이 안되지만, 내부적으로는 말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말도 안되는 소리가 말이 되는 과정 속에 있습니다.

우리의 가장 주된 일은 불변하는 것으로, 정확히 말하면 변화에 변함없이 대처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다. 이게 말도 안되는 소리라는 말은 그 자체로 누군가에게 말도 안되는 소리입니다. 여하간 내 기준에서는 말도 안되는 사태가 몇백년간 변함없이 이어져오면서 점차로 말이 되는 소리가 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 식으로 말이 안 되는 소리를 말이 되는 소리로 전환시키는 욕망의 주기가 역사를 구성한 것 아닌가요? 변화는 우리가 아니라 말과 소리에게 허용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정말로 변화를 원한다면, 우리는 당장은 말이 안되는 소리를 말이 되는 소리로 변환? 트랜스코딩? 해야 하는 것 같습니다.

여하간 우리는 변함없이 변화에 대처한다는, 말 같지 않은 말로 구성된 두 장짜리 계약서에 의거하여 변함없이 변화하는 일을 수행하고자 합니다. 그 방법은 시간-교대 근무 즉 인간-데이지 체인을 구성하는 것인데, 이로써 우리는 세계의 우발성에 대처하면서도 명목상의 불변 상태를 유지할 수 있게 됩니다. 날씨, 기분, 크고 작은 사건, 어김없이 돌아오는 주기들, 예상 밖의 부재 및 현재, 우리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채로 주어진 역사들은 이제 ‘애프터 서비스’가 가능해졌습니다.

온갖 우발성으로 인해 산산히 부서지는 우리네 자아를 보전하는 하나의 방도로 이른바 내적 일관성을 가지고자 노력하기도 하는데, 그 결과 우리 자신만의 확고한 믿음, 신념, 취향, 앎이라는 것이 발전됩니다. 그런 것을 갖는 과정에서 우리가 가져왔던 호오의 감정, 우리가 살아온 시간동안 허락된 여건 안에서 지켜온 옳고 그름의 기준같은 것이 모두 지당하고 필연적으로 느껴지며, 급기야 나 라는 대체 불가능한 고유 감각같은게 있다고 믿게 됩니다. 그런데 그 기준 자체가 외부 체계의 상상, 지각, 문화에 의해 침투된 것이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알려져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설사 그 사실을 알게된다고 하더라도, 이제 그것들은 돌이킬 수 없는 우리의 자산이며, 이제는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가 결정적인 순간 망설임을 내려놓고 결단을 이행하도록 이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