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3일, 마구잡이로 이중 주차된 차들로 인해 모두가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 속에 동등하게 잠겨있는 서울 시내 한 구청 지하 주차장. 불현듯 실현된 실존적 평평함? 무슨 일이 발생하기 전까지만 유효한…. 그 속에서 어떻게든 나가보려는 차들과 어떻게든 비집고 들어오려는 가운데 충돌 경고음의 속도가 빨라졌다가 느려지기를 반복하는 소리 풍경이 한동안 이어지고 있었다. 긁거나 긁히지 않고 박거나 박히지 않기 위한 진땀 나는 보신주의가 차량 센서 경고음을 재빨리 확장된 감각기관으로 채택하면서, 차주들은 스스로를 이동하는 기계장치의 일부로 변환시킨다. 시작점이 동기화되지 않은 폴리리듬, 공간 음향으로서의 집단적 부정맥을 연주하는 생판 초면의 남자들에 의해 수행하는 배치 게임은 해결되기보다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내가 보조석에 탑승하고 있는 말의 크기는 대략 깊이 4,785mm, 높이 1,685mm에 폭 1,900mm를 지니고 있었는데, 그 말의 전방과 후방에 부착된 센서는 뭔가 단단히 잘못되었고 X 되기 일보 직전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위급한 상황 속에서, 약 1,000Hz의 주파수 대역에서 삐-하는 간격 없는 경고음을 울린다. 나는 이 소리에 임시로 ‘측정 불가한 가까움’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다음 단계, 어쩔 수 없이 ‘측정된 가장 가까움’이라고 이름 붙일 수밖에 없었던 단계에 접어들게 되면 약 180ms에 1회씩 50ms 길이로 경고음이 울리는데, 대체로 최악의 상황은 모면하였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진다. 그 뒤부터는 경고음이 한 번 울리기까지 소요되는 대기 시간이 200ms에서 300ms로, 나아가 400ms 간격으로 늘어난다. 길어지는 대기 시간에 따라 안도감에 젖어 든 운전자는 최선을 다해 잠시간 한 몸이 되었던 기계장치와의 동기화 상태로부터 다시금 빠져나올 수 있게 된다. 마침내 장치로부터 빠져나와 장치의 문을 잠글 때, 이때는 약 2,000Hz의 주파수로 300ms 동안 지속하는, 다소 높은 소리가 150ms의 간격을 두고 대체로 두 번 울리는데 이로써 이 기계장치를 긁거나 박지 않기 위해 무진 애를 쓰며 살아가는 남자들은 장치가 잘 잠겼다는 사실을 인지한 채 자신의 일을 하러 건물 속으로 들어간다. 일을 하기 위해 장치를 굴리고 또 장치를 굴리기 위해 일을 하는 이것은 삶이라고 불리는 것 같다. 삶이라고 불리우는 것을 살기 위해 일을 마친 남자들이 이윽고 건물 속에서 빠져나와 다시 주차장으로 돌아왔을 때, 장치는 문을 열 때는 문을 잠글 때 났던 소리를 두 번이 아닌 한 번 울려줌으로써 자신의 위치를 알린다. 이 소리가 어디서 들려왔는지 단번에 찾지 못해 머리를 두리번거리며 주차장을 헤매는 불상사를 방지하기 위해 요즈음에는 차량의 위치를 조회해 주는 키오스크가 존재하는데, 그렇게 분 단위로 또 초 단위로 아껴진 시간은, 삶이라 불리우는 것의 유지를 위해 남김없이 소모된 지각력의 자리를 대신하는 쓰레기 쇼츠 스크롤링에 동원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내가 일하는 곳의 주차장에는 그런 신식 문물이 없어서 여전히 헤맬 자유가 주어져 있는데, 보청기와 관련된 자료를 올려둔 한 네이버 블로그에 따르면 1,500Hz 이상의 주파수 스펙트럼에서는 소리의 국소화(localization)에 필수적인 양이간 도착 시간 차이(ITD, Interaural Time Differences)의 단서가 모호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장치와의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경고음의 강도와 방향성이 무뎌지며, 소리가 여러 방향에서 동시에 들려오는 것처럼 느껴진다. 극단적으로 길어진 디케이는 경고음이 더 이상 들려오지 않게 된 이후에도 지속하는 효과를 남기는데, 낭만화와 의미화를 걷어낸 자리에 잔향에 주어지는 위치는 대체로 이명 현상이라고 불리는 데 그것은 앞서 말했듯 공간 속에서 헤매는 경험과 관련된다. 역으로 추적해 보면 이명 발생 장치는 시간 탕진 기계일 수 있을 것 같고 그런 식으로 다시 삶이라고 불리우는 것의 이음매를 느슨하게 만들어, 감속하라, 차를 가진 남자들과 차가 없는 여자들을 동등하게 깔아뭉개는 방식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