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lh7-us.googleusercontent.com/seCDjJW1z8yAtLlaUvMcwMsyDQsdGKXs7n_ifITpeyuiNWP4TYzeDxzWmrT8nNCWFm5LGNUTbfbqSPWzcjEa7pa7oUMjFV8k41m6L3r7Li2yggQ2au4cBp7K0fYdrj-mamAnt_JXYATXYAVVfFKgsIw

저녁 여섯시 반 언저리의 생생정보통, ‘한강의 어부'라는 타이틀을 단 꼭지가 한창이다. 한강 어부라고 하면 난지한강공원이나 뚝섬유원지에서 불법 낚시를 하는 이미지를 떠올릴지도 모르겠지만, 여기서는 김포시 하성면 전류리에서 오랫동안 어업활동을 해온 어부들을 부르는 이름이다. 전류리는 김포대교에서 북방어로 한계선 사이 어업 활동이 가능한 김포 한강의 최북단 어장으로, 북한에 인접해있어 해병대의 허가를 받은 30여척 미만의 어선만이 조업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전류리포구는 허구적인 장소가 아니다. 한강어부는 오랫동안 그 자리에 있어왔다. 그러나 이곳의 어부들을 다시금 ‘한강어부'라고 부르는 것에는 최근 불거진 김포의 서울 편입과 관련된 메가 서울-지오픽션(geofiction)의 강화를 향한 열망이 도사리고 있는 것 같다. 한강은 그야말로 하나의 강이어서, 그 시작과 끝을 엄밀하게 따지기 시작한다면 서울이라는 범위를 훌쩍 벗어나기 시작한다. 이를테면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에는 한때 한강시원지라고 알려졌던 우통수가 위치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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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메가서울-지오픽션이 스스로를 현실화하는데 성공한다면, 서울이라는 지리적, 개념적 외연은 현재의 서울을 넘어 강원도 평창군까지 뻗어나갈지도 모른다. 지금 불가능해보이는 것이 내일에도 여전히 불가능하리라 믿는 것은, 과거의 사실에 기반하여 미래를 예측하는 귀납적 사고에 기반한다. 귀납적 사고에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는데, 지금까지 가능해왔던 것, 혹은 유지되어왔던 것이 내일에도 계속해서 가능할 것, 혹은 존속할 것이라고 여기는 믿음에 아무런 합리적 근거가 없기때문이다.

물론 기반이나 기원에 대한 믿음은 비합리적일 수 있지만, 그게 당장 들통나는 것은 아니다. 귀납적 사고는 언제 어디서 발견될지 모르는 추가적인 증거에 따라 공리의 참/거짓 여부가 변화하는 비단조적 논리를 따른다.**  귀납적 사고는 인식적 수송비를 절약하기 위해 증거의 부재를 부재의 증거로 삼는다. 그러나 믿었던 것이 실상과 다르다는 사실을 밝혀줄 증거가 발견되더라도, 이상한 믿음이 계속해서 유지되기도 한다. 그 이유는 그러한 사고의 흐름이 처음에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여러 사람들이 오가면서 생겨난 오솔길처럼 일종의 인식적 단축키가 되었기 때문이다.

지오픽션은 귀납적 사고가 갖는 증거 의존적 특성과 인식적 지름길 내기의 역능을 활용하여, 단단한 땅과 같이 확고하다고 여겨지는 우리의 전통과 신념, 상식 체계에 일종의 점프컷을 낸다. 갑자기 모든 것이 가능해보인다. 지오픽션은 인식적 불도저다. 서울은 (오래된) 메가 서울 패러다임과 (새로운) 한강시원지의 발굴 작업을 통해 공간적으로, 그리고 관념적으로 증식하는 일종의 사념체(thought form)다.

만약 누군가가 오늘의 서울이 내일의 서울을 보증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는 치명적인 귀납의 오류를 저지르고 있다. 그는 과거에 무엇이 어떠했다는 경험적 근거를 바탕으로 미래가 어떠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그렇지만 소망적 사고가 집단적인 욕망과 만날 때 발생하는 대안 상식이 이른바 뉴노멀로 부상하면서 힘을 얻기 시작하는 그 어떤 곳에서라도, 예상밖에 끼어든 새로운 증거는 언제나 갑작스럽게, 그러나 합리적으로 지오그라피를 지오픽션으로 갱신한다. 지오픽션은 땅이라는 진짜 기반에 기반한.. ‘진짜’를 증거로 현실세계에 잠입해서, 결국 스스로 현실로 육화하는 허구다.


*우통수(于筒水)는 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 오대산 자락에 위치한 우물형태의 샘터로, 현대에 들어 검룡소가 한강의 발원지로 밝혀지기 전까지 오랜 세월 동안 한강의 발원지로 인식되어 온 곳이다. 한편 공교롭게도 평창군 진부면은 미술작가 김범의 지오픽션 <고향>의 배경 ‘평창군 진부면 운계리'가 위치한 곳이기도 하다. 평창군 진부면까지는 실제 지리적 명칭이지만 운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김범은 진부면에 여러 읍과 면이 있기 때문에 허구적 장소인 운계리가 하나쯤 있다고 해서 그걸 알아차릴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지만, 그래도 해당 지역 출신의 사람들에게 운계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조심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 비단조 논리(nonmonotonic logic)는 시스템에 새로운 정보가 추가될 때 기존 명제의 참 거짓 여부가 변화하는 논리를 형식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때 수정 또는 철회된 기존의 결론은 파기 가능한 추론(defeasible inference)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