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안녕하세요. 보련입니다. 오늘은 늙은이의 농담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혹시 농담을 좋아하시나요? 왠지 늙은이의 농담은 시간에 관한 농담이어야 할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각해보면, 농담이란 언제나 시간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타이밍이 빗나가면 웃음은 사라지고, 너무 일찍 알게 된 진실은 농담이 되지 않죠. 늙은이의 농담이 어쩐지 시간에 관한 농담일 것 같다는 건, 그것이 이미 지나가 버린 순간을 되풀이하며 늦게 도착하는 웃음, 혹은 되감기 불가능한 시간을 흉내내는 말의 형식이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아래는 제가 이번 작업을 위해 작성한 프로그램 노트입니다.

“다른 사람이 듣고 있던 것을 나도 함께 듣고 있다는 감각이 안도감을 주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미래를 누구보다 먼저 예측하고 대비해야 살아남아야 하는 시대에, 그런 동시성은 안심되기보다는 불안감을 안겨줄 뿐이다. 내가 먼저 들어야 하는데, 나만 알아야 하는데.. 그런 여지를, 혼자 탈출할 수 있는 여지를 주지 않는 것이 라디오가 아닐까 한다. 라디오는 충격적으로 도래해서 현재를 집어삼킬 미래를 남들보다 빠르게 먼저 매수할 수 없게하는 무엇이자, 현재의 부채와 의무를 탕감해주겠다고 터무니없이 약속하는 법을 모르는 늙은이다.*

*그 늙은이가 즐겨하는 유일한 농담은 내일이 오늘과 같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인데, 전혀 근거가 없는 그 말은 우리를 현재 속에 잠궈두는 효과가 있다.

책 이야기

농담과 시간의 문제를 이야기하기 위해, 아르카디 & 보리스 스투르가츠키의 <월요일은 토요일에 시작된다> 이야기를 조금 해볼까 합니다. 주 5일제로 일해보신 분들이라면 이 문장이 주는 섬뜩함을 바로 느끼실 수 있을텐데요, 저도 러시아 문학이나 소비에트 sf에 대한 배경 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제목이 주는 충격때문에 읽게 된 경우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제목만 들어도 약간 현기증이 오죠. 쉬어야 할 토요일이 월요일의 일부가 된다는 발상, 우리는 이것은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최근 ‘주말은 평일을 위한 레버리지다’라는 문장을 어디선가 읽고 비슷한 현기증을 느꼈는데요. 여기서 말하는 ‘레버리지(leverage)’는 원래 금융과 투자에서 쓰이는 용어입니다. 적은 자본을 지렛대처럼 활용해 더 큰 수익을 얻는다는 뜻이죠. 이러한 사고방식은 ‘휴식’을 ‘생산성을 위한 수단’으로 전환합니다. 주말은 월요일을 더 고효율화하기 위한 전략적 도구로 쓰이는 거예요. 휴식조차 일의 일부가 되는 것, 내 시간을 갖다 팔기 위해 내 시간을 더 써야만 한다는 것.. 악덕 대부업같은 이러한 시간 관리 체제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위해 수행한다고 여기는 것들, 이를테면 마음을 다스리고 실패를 받아들이기는 기술까지도 전부 포함하고 있습니다.

<월요일은 토요일에 시작된다>가 기이한 주술과 마법으로 가득찬 sf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결국 일, 구체적으로는 타임머신도 해결하지 못한 초과근무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은 여기에서 드러납니다.

소설의 줄거리를 조금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레닌그라드의 젊은 프로그래머인 주인공 사샤 프리발로프(Александр Привалов)는 여름 휴가를 위해 솔로베츠로 가는 숲길에서 히치하이킹을 하는 두 남자 코르네예프와 로만을 태워줍니다. 가벼운 대화 중, 사샤가 프로그래머라는 말에 마침 자기들도 '인간이 된 프로그래머'를 구하는 중이라고 하면서 스카우트를 제의하나 알렉산드르는 이를 정중히 거절하죠.

목적지에 도착한 두 남자는 잠자리를 제공하겠다며 '닭다리오두막'에 데려가는데, 이들을 맞이하는 것은 이상하게 거스름돈에 집착하는 쭈그렁탱이 노파입니다.

[이미지 1] 노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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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파는 “새 프로그래머가 왔구먼!” 하고 반기면서도 영수증과 절차를 읊조리며 시종 계산기를 두드립니다. 사샤를 과학의 세계에서 마법과 주술의 세계로 안내하는 문지기 역할을 하는 이 노파는 단순한 조연이 아니라, 소련 관료제를 희화화하는 풍자적 장치라는 것을 소설을 읽다보면 알게됩니다. 일종의 관료적 행정 절차처럼 작동하는 주술의 세계 속에서 발명은 기어이 노동이 되고, 월요일은 토요일부터 시작됩니다.

사샤는 원래 하룻밤만 머물 생각이었지만, 연구소의 세계에 발이 묶인 채 마법과 과학이 공존하는 이상한 실험들에 휘말리게 됩니다. 주인공 사샤는 로만 올랴렌코(Роман Оляренко)의 권유로 ‘요술과 마술 과학연구소(Научно-Исследовательский Институт Чародейства и Волшебства, 니이차보)’에서 일하게 됩니다. 밤낮없이 돌아가는 니이차보 연구소에서는 논리와 비논리, 과학과 주술, 현실과 상상이 구분되지 않으며, 사샤는 야근과 당직의 세계로 진입합니다. 로만에 따르면 월요일은 이미 토요일부터 시작되었습다. 휴가를 떠나야 할 8월도 이미 7월에 시작되었습니다. 이제 사샤의 휴가는 사샤의 것이 아닙니다.

이런 체제를 가능하게 만드는 것은 아마도 니이차보 연구소에서 수행하는 많은 실험들 중 하나인 시간에 관한 마법 때문일 것입니다. 엉망 진창으로 작동하는 가운데 갖은 방식으로 오작동하는 시간-마법을 보여주는 존재로, 죽음과 부활을 반복하는 ‘포톤(Фотон)’이라는 이름의 앵무새가 등장합니다. 포톤은 가시적 세계의 가장 작은 단위이면서 동시에 눈으로는 볼 수 없는 존재를 뜻하지요. 포톤은 언제나 실험실의 같은 위치에 놓인 평형 저울대에 앉아 여러 마리로 중첩되어 나타나고, 죽었다가 되살아나기를 반복합니다. 포톤은 연구소의 시간 실험이 남긴 일종의 살아있는 버그이자, 에러로그처럼 등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