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마지막 날, 가까운 곳에서 울리는 사이렌 소리에 잠이 깼습니다. 오전 6시 30분이었지요. 밖에서는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듯한 확성기 소리가 중얼거리듯 흐르고, 밤새 활짝 열어 둔 창문 너머로 동네 전화기의 동시 경보음이 들려왔습니다. “즉시 대피를 준비하고, 어린이와 노약자를 도우십시오.” 떨리는 손으로 라디오를 켰더니, 북한의 미사일 공격으로 비상사태가 선포되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 순간 제 눈앞에는 제가 져야 할 의무들, 우선순위, 취할 수 있는 행동들, 그리고 저와 가족이 살아남을 수 있을지의 가능성들이 번쩍이며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저는 비상시에 필요한 기술을 하나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정말 아무것도요. 어떻게 제가, 다른 식으로도 흘러갈 수 있었던 이 세계에서, 단 하나의 생존 전략도 없이 살아오게 된 걸까요? 익숙하던 세계는 갈라지기 시작했고, 다행히도 아직 살아 본 적 없는 세계가 막 펼쳐지려 하고 있었습니다.
열 분쯤 지나 앞선 경보는 오보였다는 정정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출근을 했지요. 사실 비상이 계속되었어도 아마 출근했을 겁니다. 동료들과 우리는 이 나라가 공격을 받는다면 차라리 한 번에 죽었으면 좋겠다는, 그런 농담을 주고받았습니다. 정말 그걸 바라던 걸까요? 우리는 모릅니다. 아니, 아직은 알 수 없다고 해야 맞겠지요.
여기서는 코로나 시기 내내 비상 경보가 남용되며 사람들의 주의가 무뎌졌습니다. 위기는 일상이 되었고, ‘위기’의 정의도 달라졌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소리가 우리의 장(腸) 깊숙한 곳의 감각을 깨우는 방식은 여전히 원시적입니다. (2023.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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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the last day of May, I woke up with a siren alarm from a short distance, it was 6:30 am. Outside was the babbling sound of a loudspeaker, probably broadcasting the beginning of the war. Through the window opened wide for the whole night, I could hear the simultaneous alert that the neighborhood's phone makes. The message said 'Immediately prepare for evacuation, help children and the elderly'. With shivering hands, I turned on the radio, and the state of emergency was caused by North Korea's missile attack.
At that moment, all my duties, priorities, actions that could be taken, and the possibility of me and my family's survival flashed before my eye. I had no skills that are essential in an emergency. Nothing. How could I come to have no single survival strategy in the world that could be otherwise? The known world started to tear apart, and the world that I luckily haven't lived in just started to unfold.
After 10 minutes another message showed that the earlier message was a misreport. So I went to work. I would have gone for work regardless of the state. I and my colleagues joked about the wish to be killed at once when something attacks this country. Do we really wish for it? We do not know. Or we cannot know yet.
Emergency alert was so abused during covid era here, resulting in blunt people's attention to it. Crisis became a daily routine, and the definition of crisis has shifted. But in reality, the way sound activates gut feelings remains still primitive.

5월의 마지막 날, 가까운 곳에서 울리는 사이렌 소리에 잠이 깼습니다. 오전 6시 30분이었지요. 밖에서는 전쟁의 시작을 알리는 듯한 확성기 소리가 중얼거리듯 흐르고, 밤새 활짝 열어 둔 창문 너머로 동네 전화기의 동시 경보음이 들려왔습니다. “즉시 대피를 준비하고, 어린이와 노약자를 도우십시오.” 떨리는 손으로 라디오를 켰더니, 북한의 미사일 공격으로 비상사태가 선포되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 순간 제 눈앞에는 제가 져야 할 의무들, 우선순위, 취할 수 있는 행동들, 그리고 저와 가족이 살아남을 수 있을지의 가능성들이 번쩍이며 스쳐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저는 비상시에 필요한 기술을 하나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정말 아무것도요. 어떻게 제가, 다른 식으로도 흘러갈 수 있었던 이 세계에서, 단 하나의 생존 전략도 없이 살아오게 된 걸까요? 익숙하던 세계는 갈라지기 시작했고, 다행히도 아직 살아 본 적 없는 세계가 막 펼쳐지려 하고 있었습니다.
열 분쯤 지나 앞선 경보는 오보였다는 정정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출근을 했지요. 사실 비상이 계속되었어도 아마 출근했을 겁니다. 동료들과 우리는 이 나라가 공격을 받는다면 차라리 한 번에 죽었으면 좋겠다는, 그런 농담을 주고받았습니다. 정말 그걸 바라던 걸까요? 우리는 모릅니다. 아니, 아직은 알 수 없다고 해야 맞겠지요.
여기서는 코로나 시기 내내 비상 경보가 남용되며 사람들의 주의가 무뎌졌습니다. 위기는 일상이 되었고, ‘위기’의 정의도 달라졌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소리가 우리의 장(腸) 깊숙한 곳의 감각을 깨우는 방식은 여전히 원시적입니다. (2023.05.31)
당신의 안부를 빌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