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18일 우루루에서 진행된 라디오월딩 토크에서 발표한 원고입니다.

라디오-잠금 Radio-Lockin

저는 오늘 라디오가 사람들에게 (준)동시적으로 도달한다는 사실에서 출발하여 이야기를 시작해보려고 합니다. 준동시성이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예상하실 수 있겠지만 생방송 라디오라고 해서 엄밀한 의미에서 완벽한 동시성을 갖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 저는 편의상 라이브 방송이 청자에게 동시에 도달한다고 가정하려고 합니다. 그렇게 해야만 오늘 제가 주제로 제안안 '락인', 즉 잠금 효과와 라디오의 상관관계에 대해 보다 수월하게 연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라디오로 락-인이라는 표현에서, 저는 고립된 각각의 청취자들이 동시성으로 함께 잠겨든다는 의미에서 '잠긴다'는 표현을 쓰고싶었습니다. 잠근다, 잠겨든다라는 두 가지 표현이 중의적인 점도 있습니다. 세일즈 관점에서 잠금 효과(Lock-in effect)는 사용자가 특정 제품이나 서비스, 기술에 익숙해지면서, 계속 해당 선택에 머물게 되는 현상을 뜻합니다. 잠금 효과는 전환 비용, 즉  다른 대안으로 바꾸는 데 드는 비용이 커서 발생하거나, 혹은 과거의 선택에 대한 경로 의존성이 커져서 발생합니다.

저는 라디오를 청취하는 행위로는 그 누구도 다른 사람보다 정보를 빨리 습득할 수 없다는 사실에 주목해보려고 합니다. 즉, 우리는 라디오를 듣는 행위로는 남들보다 한 걸음 빠르게 흐름을 읽을 수 없습니다. 이 지점에서, 남들이 모르는걸 먼저 알 수 없다는 사실을 저는 투기의 문제와 연결지어보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기본적으로 투기 행위는 어떤 정보에 대해 남들보다 발 빠른 접근성이 있어서, 그 정보를 바탕으로 특정한 물건의 가치가 올라갈지 아니면 내려갈지를 가늠하고 그 예상치를 바탕으로 시세 차익을 추구하는 행위와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만약 누군가 투기를 하려고 한다면, 이미 수면 위에 올라와 있는 정보, 예컨대 오늘의 시가 총액을 바탕으로 투자 결정을 내려서는 너무 늦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 시가총액의 결과 자체가 이미 그 자체로 투기의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바로 이 점이 투기의 본질이기도 합니다. <투기 자본주의>라는 책에서는 이 메커니즘을 "거울 게임"(61쪽)라고 표현합니다. 투기가 작동하려면 밝은 미래의 전망에 대한 희망이 충분히 공유되어야 그럴듯해지기 때문에, 투기꾼 본인은 그 미래에 대해 회의적으로 생각할지라도 남들은 그 약속을 믿는다고 가정해야 합니다. 이런 식으로 투기 메커니즘이 일종의 '믿음의 릴레이'로 구성된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투기 자본주의>의 저자는 소위 유니콘 스타트업 기업의 예시를 들어 투기가 작동하는 방식을 설명합니다. 다음은 책 속의 문장 중 하나입니다. "(..)스타트업 기업들은 자신들의 활동이 혁명적일 가능성이 있기에 현재의 사업 모델을 파괴하고 나서 장기적으로 수익성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121쪽) 이들 스타트업은 앞으로 도래할 미래의 압도적이면서도 필연적인 가능성으로 인해 현재의 부채가 아무것도 아니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민간 및 공공의 벤처캐피탈에서 자금을 조달할 명분과 그들이 기업의 현재 적자를 용인할 근거를 마련합니다. 이것을 저자는 '미래로의 흡수에 대한 열망'이라고 표현하는데요, 즉 현재의 난관이 장및빛 미래에 원만하게 흡수될 것이라고 가정한 채로 현재를 대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히 현재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바꿉니다. 보다 구체적으로는 현재의 부채를 대하는 태도를요. 이게 빚을 내는 것과 관련된 도덕적 부채감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그런 뜻이라기보다는 '현재는 결국 무의미해질 것이다. 미래로 인해'라는 어떤 시간 감각을 내면화하는 것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미래는 지나간 과거로 연역될 수 없고, 현재의 부채에 종속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에 따라 다음과 같은 주장이 성립할 수 있게 됩니다. "시간의 화살표가 역전되어 전통적인 구조가 수정된다. 젊은이들은 노인들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왜냐하면 젊은이들의 자본은 미래 속에서 가치가 있는 반면에 노인들은 자신의 자본을 족쇄처럼 끌고 가기 때문이다. 기존의 경험은 미래 상황에 적응하는 유연성에 비해 평가절하된다. 저축은 위험에 대한 반감을 반영하지만 빚을 지는 것은 미래에 대한 신뢰를 의미한다." (투기 자본주의. 89-90쪽)

그렇다면 이러한 투기적인 사고방식이, 라디오라는 매체의 시간성과 어떻게 상충되는 것일까요? 일단, 투기적 경향을 구성하는데 주요하게 작용하는 것은 다른 투기꾼들에 대한 관찰과 모방입니다. 이 관찰과 모방의 가능성으로부터 박탈되어있다는 것을 저는 라디오 청취자의 조건으로 가정하였습다. (이러한 가정은 기술적으로 엄밀하지도 논리적으로 정연하지도 않으며, 전적으로 편의와 목적을 위해 구성된 가정임을 말씀드립니다.) 이러한 라디오 청취자의 조건은 신자유주의가 가정하는 인간 주체성과 상충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지금 사람들은 더 이상 직접 사물의 가치를 정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우리는 이미 결정된 것이나 다름 없는 가치 중 어떤 것에 패를 걸 것인가를 결정합니다. <투기 자본주의>의 저자는 이것을 '인간을 살아있는 제어장치로의 축소함'라고 표현합니다. 더 나은 제어장치가 되는 방법은 다른 제어장치들보다 발바르게, 암암리에 움직여야 합니다. 더 나은 제어장치가 되기 위해 '리딩방'을 파서 폐쇄적인 정보 회로를 구축하거나, '다크풀'을 통해 가격 변동 없이 매도와 매수를 진행합니다. 관측의 독점권을 얻는 동시에 모방을 차단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라디오의 청취자는 스로를 계산-주체로 환원하기 위한 데이터, 즉 “타인은 어떻게 행동하는가?”에 관한 데이터를 얻기 곤란합니다.우리는 그 과정을 라디오 DJ라는 대리-조절기(proxy-regulator)에게 위임합니다. 라디오 청취 과정에서 우리가 어떤 종류의 참여를 하였고, 그 참여가 추후 사연 낭독이라던지 경품 추천 등으로 응답받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청취자에 의해 촉발된 피드백 과정이라기보다는 방송국이라는 대리 조절기를 통해 일어나는 것입니다. 진정한 프롤레타리아이기보다는 하잘것 없는 자본이라도 활용해서 살아남아야하는 개미투자자 주체에게는 어떤 정보가 동등하게 주어진다는 사실 자체가 생경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듣고 있는 것을 나도 듣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안도감을 주고요.

이 라디오-조절기는 청취자에게 언제나 '미래는 현재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라는 전언을 새겨줍니다. 이런 방식으로 라디오는 청취자에게 특정한 방식으로 경로 의존성을 형성하면서, 자연스럽게 잠금 효과 속으로 불러들입니다. 라디오라는 청취 양식 속에서 청취자는 '예상치 못한 미래의 가능성'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충격적으로 도래해서 현재의 모든 것을 집어삼킬 그런 투기적인 미래를 기대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라디오의 진부성과 관련이 있으며, 어떤 의미에서 하나의 라디오 방송은 늘 어떤 범주 내에 속하는 같은 음악을 틀고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라디오의 청취자는 라디오를 들음으로써 더 높은 미래를 꿈꾸지 않으며, 어제의 그 목소리가 오늘도 여전히 거기에 있기를 기대합니다. 라디오적 청취의 양식 속에서 현재는 과거로부터 연역 가능하며, 미래는 현재로 말미암아 예상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현재는 미래에 의해 무의미한 것으로 '절하'되지 않습니다.

동시적 청취를 통해 동기화되지 않는다고 말할 때 의미하는 것은 이와 같습니다. 절상과 절하의 피드백 루프은 동기화 메커니즘입니다. 현재를 대하는 태도에 대한 동기화요. 가능한 모든 미래들 중 극히 제한된 시나리오에 모든 패를 거는 투기는 단 한 가지 버전의 미래만을 전제하며, 이것은 현재의 버전도 단일한 것으로 만듭니다. 그러나 안드레아스 토퍼의 그림이 보여주듯, 현재는 그 자체로 이미 분할되어있습니다. 비동시적인 것은 소식이 도착하는 속도가 아니라, 이미 무수한 과거-현재가 중첩된 결과로서 존재하는 현재 그 자체입니다. 이것이 아르멘 아바네시안과 수하일 말릭이 '사변적 시간 복합체'라는 글에서 정의한 비동시성(asynchrony)의 의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