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대체로 다이어그램(diagram)이 관계를 표현한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다이어그램은 현실 세계의 요소와 관계를 추상적으로 압축하여, 2차원의 기하학 모델로 시각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관계를 표현하지 않는 다이어그램도 존재한다. 흔히 볼 수 있는 기관의 조직도나 집합 관계를 표현하는 벤다이어그램, 사유의 주관적 비약을 허용하는 마인드맵, 그리고 기계 학습의 주요 알고리즘인 결정 트리(decision tree)와 같은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다이어그램이 관계 표현의 도구라는 우리의 생각은 어디서 온 것일까. 이러한 직관은 UX의 창시자 도널드 노먼이 말하듯, 우리들 중 상당수가 상호작용을 설계하거나, 또는 우리가 상호작용하는 사물에 관한 정보를 설계하는 일에 종사하는 데서 오는 것일는지도 모른다.

노드는 다른 것으로 더 잘게 쪼개질 수도, 비슷한 다른 것과 묶여 더 큰 하나가 될 수도 없는 고유한 단위다. 노드의 집합으로 구성된 모듈은 낮은 결합도(loose coupling)와 은닉(hiding)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낮은 결합도란 다른 개별 구성 요소의 정의에 대해 거의 또는 전혀 알지 못하거나, 그것들을 사용 및 참조하지 않음을 뜻한다. 은닉이란 속성을 직접 접근하지 못하게 숨기는 것을 뜻한다. 이는 이른바 ‘접근 불가한 사적 실재'를 주장하는 철학적 제언이기에 앞서, 주류 프로그래밍 패러다임인 객체지향적 설계의 실용적 규준이다. "관계항들은 관계들에 선행하지 않는다(relata do not precede relations)"라는 캐런 바라드(Karen Barad)의 제언에 대한 그레이엄 하먼의 반대급부에 동의할지 여부는 당신의 입맛에 달려있지만, 모듈의 집합이라고 할 수 있을 다이어그램의 구성 요건을 검토한다면 비관계성 테제는 '의문의 1승'을 거둘 것이다.

이른바 객체지향적 패러다임에 입각하여, 관계성 테제에 대한 반론을 다시 쓴다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노드들이 어떻게 관계 맺고 있는가는 그 노드의 선언에 선행하지 않는다. 그러나 당위적 주장으로 귀결되는 관계성에 관한 철학적 이론을 정말로 의미있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그것을 정보 공학의 관점에서 보완할 필요가 있다. 아연 클라인헤이런브링크는 『연속성에 반하여』(2022)의 모든 지면을 관계성과 연속성에 대한 전통적인 해석이 왜 옹호될만하지 않은지를 설명하는데 할애한다. 여기서 저자가 전개하는 구체적인 철학적 근거와는 별개로, 이러한 주장은 다이어그램의 표현 방식인 그래프에서 노드(node)의 존립 조건을 자세히 살펴봄으로써 옹호될 수 있다.

분해도(explosive view)는 여러모로 좋은 예시이다. 우리가 기계의 부품 카탈로그나 장치의 조립 및 유지 보수 설명서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그것 말이다. 폭발의 순간에 드러나는 각각의 부품들은 그 자체로 또 다른 분해도를 필요로 하는 고유한 기계다. 사물의 내부 및 작동 원리를 드러낸다는 애초의 기획은 더 작은 단위에서조차도 여전히 그 내부를 은닉하고 있는 부품(components)의 닫힌 실재 앞에서 여전히 성사되지 않는다. '그것이 무엇인가라'는 이름의 포인터가 값을 찾지 못하고 역참조된다. 분해도에서 문자 그대로 폭발하는 것은 내면의 불가지함이다.